우리나라에 노래방이라는 것이 입성 한지도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의 노래방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문화로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도 스트레스 해소 하는 데는 으뜸인 장소입니다.
이 노래방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 잡았는지 한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1, 가라오케 반주기
노래방에 시초가 된 노래 반주만 나오는 기계는 일본인 이노우에 다이스케라는 사람이 발명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고베에서 무명 연주자였습니다. 주로 업소에서 손님이 노래에 반주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반주들을 미리 녹음을 해서 손님이 원하 곡을 틀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미리 녹음을 해 두었습니다.
이후 반주가 필요한 곳에 미리 녹음테이프를 제공하였습니다. 반응이 의외로 좋아 자동차용 오디오와 소형금고, 앰프를 조립해서 1971년을 반주기계를 만들어 냅니다. 이 반주 기계가 가라오케입니다. 가라는 일본어로 비어있다는 뜻이고 오케는 오켸스트라의 오케입니다
가라오케 기계는 맨 처음에는 반주기만 되었고 그 이후 화면에 가사를 보이게 하였고 가사 뒤에 영상까지 보이게 하였습니다. 가라오케는 1980년대 일본인들에게 대중적인 놀이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라오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아 2024년에 발명자인 이노우에 다이스케는 노벨상을 풍자해 만든 이그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수상이유는 가라오케를 통해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배울 수 있게 한 공로가 인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 1990년대 노래방 한국에 상륙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에서 처음으로 가라오케 기계가 유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래방이 있기 전에는 식당이나 술집등에 비치되었습니다.
그 후 노래만 불을 수 있는 공간인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1986년에 노래방기계가 개발이 되었습니다. 초반에 반주만 나오고 가사도 제공 되지 않아 가사책을 보고 불러야 했으며 음질도 좋지 않았습니다.
가사 문제는 1990년도 중반에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와와전자가 지금의 노래방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노래방 문화가 시작된 부산에 기계를 보급하게 되었습니다. 아싸 노래방 기계도 있었지만 아싸는 주로 가정용 노래방 기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노래방 문화는 빠른 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술모임 마지막 코스는 무조건 노래방이었습니다.
3. 과거 노래방에서 현재 노래방
노래방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서 노래하는 곳으로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맨 처음에는 어른들만에 놀이 공간이었습니다. 1999년에 들어서면서 밤 10시 이전까지 청소년 노래방 출입을 허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 시절 범죄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1990년 1월~ 1998년 7월까지 유흥업소 영업제한이 시행되었습니다 노래방도 유흥업소에 들어가 영업시간에 제한을 받았지만 사람들의 흥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회식자리가 중요했던 시절에는 노래방 안에서 흥겨운 분위기 위해 음치탈출 학원도 다니었습니다.
과거에는 노래방안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제공해 주었는데 이제는 USB로 바뀌었습니다.
2001년 이후에는 노래연습장이라고 개정되었습니다
몇 전부터 코인 노래방이 흥행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잠깐동안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즐기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노래라는 것이 항상 사람을 감정을 충만하게 할 수 있어서 노래방의 사랑은 한결같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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