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은 조약이 아니었다 — 일본이 침략을 정당화한 첫 수”
역사는 기록이자, 증언이며 때로는 판단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은 그 어떤 조약보다도 깊은 상처를 남긴 역사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단지 외교권을 빼앗긴 비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불법적인 체결, 무력의 협박, 고종의 부재, 관리들의 분열, 순국과 배신의 선택이 얽혀 있습니다.오늘 이 글에서는 을사늑약이 왜 불법이었는지, 이 조약이 시대마다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 왜 고종은 서명하지 않았는지, 어떤 이들이 이에 맞서 싸웠으며 결국 조선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깊이 있게 다뤄보려 합니다. 1조약이 아닌 '늑약', 불법으로 탄생한 문서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 만든 문서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한일협상조약..
2025. 6. 14.
지금도 낯선 이름, 나혜석 — 사랑했고, 고백했고, 버림받은 여인
“나는 죄인이다. 내 욕정을 말살할 능력이 없었다.”— 나혜석, 『이혼고백서』한 여인이 있습니다. 100년 전, 조선과 근대 사이의 문턱에서, 그녀는 사랑을 했고, 예술을 했고, 그리고 이혼을 했습니다.이름은 나혜석(羅蕙錫). 여성 인권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동시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찜찜하게 하는, 복잡하고 낯선 여인입니다.그녀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왜 그렇게 버림받아야만 했을까요?오늘은 그녀의 고백, 즉 『이혼고백서』를 중심으로 그녀가 택했던 삶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1. 나혜석, 시대를 거스른 여인1910년대.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여성은 여전히 ‘집안의 명예를 지키는 존재’로만 여겨졌습니다.그런 시기에,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 여..
2025.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