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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제시대50

사람을 향한 존중, 그 시작은 사랑에서 — 김구와 최준례의 결혼 이야기 1900년대 일제의 그림자로 초, 조선의 하늘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 시대에 김구는 감옥살이와 도망, 출가와 환속을 반복하며 세상의 경계 위를 걷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스스로 말합니다. 자신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모든 이들을 존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건 그의 아내 최준례 여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1 김구 앞에 나타난 당찬 여인, 최준례그에게 다가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황해도 옹진 출신의 최준례 여사. 그녀는 부모가 이미 짝지어준 혼례를 거부하고 부모의 노여움도 무릅쓰고, 교회의 책벌도 감수하며 집을 나섭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30세 중반의 김구의 곁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녀가 김구를.. 2025. 6. 24.
정약용의 현감 시절, 실속 있게 백성을 돌보다.- 짧지만 깊었던 통치 조선 후기의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은 우리가 흔히 학문과 저술 활동으로 기억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글만 쓰는 이론가가 아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방 수령, 즉 현감으로 일하면서도 누구보다 철저하고, 또 실속 있게 백성의 삶을 돌봤던 현장 행정가였습니다. 정약용의 현감 시절은 그 자체로 실학의 현실 적용이자, 조선 후기 수령 행정의 이상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1.곡산현에서의 첫 실험 — 직접 걷고, 직접 듣다1794년, 정조의 명을 받아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현의 현감으로 부임합니다. 곡산은 외지고 험한 산지가 많은 지역으로, 당시 조선의 중앙 정치 무대에서 보면 다소 소외된 고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곳을 단순한 유배지처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곡산을 자신의 실학 사상을 현.. 2025. 6. 17.
신사임당, 율곡의 어머니가 아닌 그녀 자신의 예술가 이야기 “신사임당? 율곡 이이 어머니잖아.”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5만 원권의 얼굴이자, ‘현모양처’의 상징. 자식을 훌륭하게 키운 지혜로운 어머니.그녀의 이름은 언제나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에 덧칠되어 있습니다.하지만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단지 어머니였을까요?그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살았던 조선 중기의 ‘자기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오늘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벗고, 그녀 자신으로 살아간 신사임당의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1. 딸로 자라며, 세상을 배우다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申仁宣)입니다. 그녀는 강릉에서 태어났고,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했습니다. 특히 외할아버지 이사온은 학문을 중시하는 인물이었고, 여성에게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관.. 2025. 6. 15.
“을사늑약은 조약이 아니었다 — 일본이 침략을 정당화한 첫 수” 역사는 기록이자, 증언이며 때로는 판단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은 그 어떤 조약보다도 깊은 상처를 남긴 역사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단지 외교권을 빼앗긴 비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불법적인 체결, 무력의 협박, 고종의 부재, 관리들의 분열, 순국과 배신의 선택이 얽혀 있습니다.오늘 이 글에서는 을사늑약이 왜 불법이었는지, 이 조약이 시대마다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 왜 고종은 서명하지 않았는지, 어떤 이들이 이에 맞서 싸웠으며 결국 조선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깊이 있게 다뤄보려 합니다. 1조약이 아닌 '늑약', 불법으로 탄생한 문서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 만든 문서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한일협상조약.. 2025. 6. 14.
을사오적 권중현 – 펜 하나로 조선을 넘긴 조용한 매국노 “권중현(權重顯)” — 흔히 ‘을사오적’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이 인물은 단순한 매국노가 아닙니다. 그는 무기를 들지도 않았고, 직접 백성을 탄압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펜 하나로 나라의 경제를 넘겼고, 구조적인 친일체제를 설계하는 데 조용히, 그러나 깊이 가담한 인물이었습니다.1. 농상공부대신이란? – ‘경제 대통령’에 해당하던 자리권중현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농상공부대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현대적 의미로 표현하자면 산업부 + 농림부 + 중기부 + 상공회의소 총괄 장관을 모두 합친 수준의 ‘경제 최고 책임자’였습니다.농상공부대신은 다음과 같은 핵심 권한을 가졌습니다:농업 정책 결정 및 농지 관리상업·무역 정책 및 관세 조정공업(수공업 및 초기 근대산업) 진흥과 자원 개발기술 도입, 외국.. 2025. 6. 6.
비운 사도세자와 조선 무예의 보고(寶庫) 『무예도보통지』: 못다 이룬 꿈, 찬란한 유산으로 꽃피우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의 비극적인 왕세자, 사도세자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인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릴게요. 많은 분이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만을 알고 계시겠지만, 그는 사실 뛰어난 무예가이자 조선 무예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습니다.1. 비운의 세자, 무예에 심취하다: 미디어 속 이미지와는 다른 진짜 사도세자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왕세자입니다. 그의 삶이 오직 비극으로만 점철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예와 병법에 남다른 흥미와 재능을 보였습니다. 단순히 무술을 즐기는 것을 넘어, 조선의 국방력 강화에 대한 깊은 고민을 품고 무예 발전에 헌신했던 인물이었죠.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사도세자의 이미지는 흔.. 2025. 6. 5.
함흥차사의 진실과 상상: 돌아오지 못한 사신들과 이성계의 선택 “보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우리는 흔히 답장이 없거나, 심부름을 시키고도 아무 소식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바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한 표현이죠. 그런데 이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조선왕조 초기의 깊고도 아픈 정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이번 글에서는 함흥차사의 역사적 뿌리,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신들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바탕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1. 조선의 시작과 불안한 권력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는 바로 이성계입니다.당시 그는 고려 말 무장으로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명장이었고,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5. 6. 4.
세종이 며느리를 두 번이나 내친 이유 – 문종과의 이혼, 유교의 칼날 아래 무너진 두 여인” 조선의 왕비이자 세자빈이라는 자리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편에는 엄격한 유교 규범과 왕실의 위엄이라는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막 건국되고,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과도기에는 궁궐에 들어온 여인들에게도 그 이상적 덕목이 엄격히 요구되었죠.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세종의 며느리들이자 문종의 아내였던 희빈 김씨와 순빈 봉씨입니다. 그녀들은 각각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지만, 끝내 폐위되고 쫓겨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두 번이나 며느리를 내쳐야 했던 세종, 그리고 그 곁에서 침묵했던 문종. 과연 이들의 선택은 절대적인 옳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유교라는 새로운 가치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였던 걸까요?1.첫 번째 며느리, 희빈.. 2025. 6. 1.
지금도 낯선 이름, 나혜석 — 사랑했고, 고백했고, 버림받은 여인 “나는 죄인이다. 내 욕정을 말살할 능력이 없었다.”— 나혜석, 『이혼고백서』한 여인이 있습니다. 100년 전, 조선과 근대 사이의 문턱에서, 그녀는 사랑을 했고, 예술을 했고, 그리고 이혼을 했습니다.이름은 나혜석(羅蕙錫). 여성 인권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동시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찜찜하게 하는, 복잡하고 낯선 여인입니다.그녀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왜 그렇게 버림받아야만 했을까요?오늘은 그녀의 고백, 즉 『이혼고백서』를 중심으로 그녀가 택했던 삶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1. 나혜석, 시대를 거스른 여인1910년대.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여성은 여전히 ‘집안의 명예를 지키는 존재’로만 여겨졌습니다.그런 시기에,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 여.. 2025.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