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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제시대51

지금도 낯선 이름, 나혜석 — 사랑했고, 고백했고, 버림받은 여인 “나는 죄인이다. 내 욕정을 말살할 능력이 없었다.”— 나혜석, 『이혼고백서』한 여인이 있습니다. 100년 전, 조선과 근대 사이의 문턱에서, 그녀는 사랑을 했고, 예술을 했고, 그리고 이혼을 했습니다.이름은 나혜석(羅蕙錫). 여성 인권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동시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찜찜하게 하는, 복잡하고 낯선 여인입니다.그녀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왜 그렇게 버림받아야만 했을까요?오늘은 그녀의 고백, 즉 『이혼고백서』를 중심으로 그녀가 택했던 삶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1. 나혜석, 시대를 거스른 여인1910년대.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여성은 여전히 ‘집안의 명예를 지키는 존재’로만 여겨졌습니다.그런 시기에,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 여.. 2025. 5. 28.
“궁중여인들이 찾던 신성한 공간 ‘소격서’, 조광조의 개혁과 중종의 선택” 조선시대 왕실 제례기관 중 ‘소격서’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도교와 무속 신앙이 혼재된 소격서는 단순한 제례 기관 그 이상으로, 특히 궁중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소격서는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으로 폐지됩니다. 오늘은 소격서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으며 궁중 여성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조선 초기에 폐지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조광조가 폐지한 이후 상황과 그 여파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1. 소격서의 탄생과 역할 — 도교·무속의 중심 기관소격서의 역사적 기원소격서는 원래 고려 말기부터 형성된 국가 제례 기관으로, 조선 건국 후에도 유지되던 도교적 제례를 담당하는 기관입니다.‘소격(昭格)’이란 ‘신에게 영광을 밝힌다’는 뜻으로, 하늘과 땅, 신령에 제사를 지내는 역.. 2025. 5. 27.
"조선 궁궐에 도깨비가 나타났다 — 인선왕후 처소를 뒤흔든 미스터리 사건 “궁궐 깊숙한 곳, 왕의 어머니가 거처하는 대비전에 밤마다 괴이한 소리가 울린다.”이 말이 조선 후기 한양 도성의 궁궐을 뒤흔들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도깨비가 궁궐에 나타났다는 소문. 그것도 임금의 어머니가 머무는 가장 신성하고 조용해야 할 공간, 대비전(大妃殿)에서 말입니다.놀라운 점은 이것이 단순한 민간 전설이 아니라는 것.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국가의 공식 기록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 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숙종의 할머니, 인선왕후(仁宣王后)입니다.1.인선왕후는 누구인가? 숙종의 할머니, 조선 궁중의 정신적 기둥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왕비이자, 제18대 왕 현종의 어머니, 그리고 숙종의 할머니였던 인선왕후는 숙종이 즉위한 이후 ‘대비’로 불리며, 궁.. 2025. 5. 21.
“친일파 박제순을 향한 손자 박승유의 외침, ‘나는 그를 조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을사오적중에 한사람인 박제순의 친일파 행보와 박제순를 가문의 수치라고 말한 그의 손자 박승유가 얼마나 많은 원망을 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출생과 성장: 박제순의 초기 생애박제순(朴齊純)은 1858년 10월 7일,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서 깊은 양반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을 익히고 학문에 힘썼습니다. 조선 후기의 혼란기였던 이 시기, 많은 양반 자제들이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였고, 박제순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문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조정 내에서 외교와 관련된 사안에 관여하게 됩니다. 특히 국제 정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능력과 언변은 고종의 눈에 들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2. 김윤식과의 관계: .. 2025. 5. 20.
퇴계이황은 지적 장애가 있는 아내를 존중해 주었다. 조선 중. 후기에서는 부부유별이라 하여  아내는 남자 하는 일에 감히 나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부유별이라는 원래의 뜻이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가 서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역할에 충실이 하며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전기에  부부유별이라는 뜻을 제대로 받아들인  퇴계이황의 아내 사랑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퇴계이황의 두번째 아내주자의 성리학을 한층 더 발전시킨 퇴계이황은 누구보다 공자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였던 인물입니다.   이황은 2번 결혼을 하였는데 첫째 부인 허 씨는 두 명에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세상을 떠나고 맙이다.  이황은 첫번째 아내 3년상을  마친 뒤  두 번째 부인 권 씨를.. 2025. 4. 12.
처세술에 뛰어난 을사오적의 한사람 친일파 이근택 을사오적 중에 한 사람인 이근택은 처세술 하나로 관직에 올랐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뛰어나게 잘 아는 인물 있었습니다.  이근택은 어떻게 관직에 올랐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날마다 생선을 받쳐 명성황후의 눈에 들다 이근택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1865년에  무인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어렸을때 이름은 이근용이었으나 30대 후반에 이근택로 계명하였습니다. 이근택이 17세인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민 씨 집안사람들은 공격을 당하였고 명성황후까지 제거하려고 해 명성황후는 급히 도망쳐 충주 장홍원에 사는 친척 민응식의 집에 은신하게 되었습니다.당시 옆 동네에 살았던 김근택은 명성황후가 민응식 집에 은신하였다는 정보와 명성황후가 생선을 정보를 듣고는 이근택은 명성황후가 한.. 2025. 4. 10.
정조는 궁녀 성덕임을 평생 마음 속 깊이 연모하였다. 정조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몇 년 전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기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시청한 드라마지만  한편으로 조선의 왕이 한 여인을 정말로 순수하게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들기도 하였습니다. 정조는 정말로 성덕임이라는 궁녀를  얼마나 애틋하게 연모하였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1. 어린 정조와  혜경궁 홍씨 궁에서 쫓겨나다.1762년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귀주 안에 가둬서 죽인 사건 임오화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사도세자가 귀주에 갇혀있는 동안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위시켜 버립니다. 사도세자가 폐위가 되자 부인 혜경궁 홍 씨와 아들 정조와 딸들은 더 이상 궁궐 안에 있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혜경궁 홍 씨의 친정인 홍봉한의 .. 2025. 4. 4.
고려말 서민을 위해 개혁을 시도 하였던 신돈은 요승으로 기록되어있다. 신돈은 공민왕의 총애의 힘을 받아 부패한 고려를 개혁을 시도하였던 고려의 승려였습니다.힘없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그들의 권익을 챙겨주고 싶어지만 신돈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신돈은 어떻게 공민왕의 총애를 받고 무엇을 하였는지 그리고 왜 요승이로 기록이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1. 천한 노비의 아들이 절에서 태어나다.신돈은 1300년대 초 고려의 계성현에 옥천사라는 절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기록에는 없으나 어머니는 옥천사의 노비출신이었습니다. 신분의 계승으로 신돈도 노비출신이었습니다.신돈은 어려을 때부터 총명하고 언어구사에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총명하다고 해도 노비출신이 승려가 될 수는 없는 당시 현실에서 신돈은 승려가 되었습니다... 2025. 3. 12.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 악녀 중에 하나 연산군의 여자 장녹수 연산군은 조선시대 10대 왕으로 2번에 사화로 많은 사람들을 살사 하였고 각종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나 백성들을 피폐하게 한 왕이었습니다.  그 옆에서 연산군의 총애를 이용해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렸던 장녹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1, 장녹수는 첩에 딸로 태어나다장녹수의 아버지는 양반인 장한필이며 어머니는 천민출신이 첩이었습니다. 조선 시대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가는것어서 장녹수의 아버지가 양반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천민이기 때문에 장녹수역시 천민이었습니다.장녹수는 살기위해 시집을 여러 번 같으며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였습니다.그녀는 그렇게 흘러 흘러 살다가 왕실의 일가인 제안대군의 노비와 혼인을 하여 제안대군의 사노비가 되었습니다. 장녹수는 자식까지 낳고 살았지만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 2025. 3. 4.